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만슈타인 (문단 편집) ==== [[세바스토폴 공방전]] ==== 그해 9월, 제 11군 사령관 [[오이겐 리터 폰 쇼베르트]]가 사망한 이후, 만슈타인은 남부집단군 소속인 제11군 사령관에 임명되어 [[청색 작전]]의 일환으로 [[크림 반도]]의 중심지이자 소련 [[흑해]] 함대의 본거지인 [[세바스토폴]]을 공략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. 세바스토폴은 [[러시아 제국]] 시절부터 [[오스만 제국]]과 싸우기 위해 만든 유서 깊은 요새로 소련군은 세바스토폴에 3겹의 방어선을 쌓고 300mm [[해안포]]를 배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 공격하는 입장에선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. 이에 만슈타인은 [[구스타프 열차포]]와 [[88mm 대공포|88mm]]를 비롯한 1,300문에 이르는 [[포병]] 전력을 대규모로 동원해서 5일 동안 쉬지 않고 포격해서 소련군의 방어망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걸로 맞대응했다. 독일군은 포격의 결과 소련군의 방어망을 분쇄하는 데 성공했지만, 아직 남아서 끈질기게 저항하는 소련 [[해군 육전대]] 때문에 예상보다 더 많은 피해를 당해 전투 종료 이후에 제11군은 더 이상 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치게 된다. 만슈타인은 다시 세바스토폴에 포격을 퍼부어 소련군이 요새를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고 소련군을 케르치 반도로 밀어붙여 '''30여 개 [[사단(군사)|사단]]을 소멸'''시킨다.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여러 모로 주목할 만한 전투인데 주로 기동전에 능한 걸로 알려진 만슈타인이 요새 공략과 포병의 대규모 운용이라는 장기와는 전혀 다른 전투에도 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. 여기에 공격자 입장에서는 힘든 [[요새]] 공략전을 2차 공세에서 3.14:1의 우월한 교환비로 끝내 버렸다는 것에서 극찬받는다.[* 이전 버전에서 49대1의 교환비라고 하였으나 독일 2차 공세 피해와 소련군 1, 2차 피해의 합으로 비교해도 5.71:1이다. 물론 3.14:1도 충분히 대단한거다. 다만 바르바로사 작전기 평균교환비보다는 떨어진걸 보면 요새는 요새다.] 히틀러는 승전보를 듣자 입이 떡 벌어졌고, 만슈타인을 극찬하며 [[원수(계급)|원수]]로 승진시켰다. [[상급대장]]이 된 지 4개월 만이었다. 만슈타인 본인은 저서에서 이 공략이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공략이라고 밝힌 바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